당일 검사후 결과 바로 보고 치료…진화하는 건강검진센터
매일경제
Nov 3, 2025

서울 마곡의 원그로브 건물, 4층 입구에 들어서자 따스한 간접조명 아래 잔잔한 음악이 흐르고 커피 향이 은은하게 번진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곳은 라운지형 카페테리아다. 흰색 조명과 냉기 가득한 일반 병원과 달리, 부드러운 색감과 조용한 분위기가 어우러져 호텔 로비나 PB센터에 들어선 듯하다.
대기자들로 북적이는 건강검진센터라는 선입견을 깨버리는 이곳은 지난 9월 문을 연 '부민프레스티지라이프케어센터'다. 8600㎡(약 2600평) 규모의 드넓은 공간에 한 층 전체가 건강검진과 상담, 휴식 공간으로 구성돼 있다. 각 검사실은 방문자가 자연스럽게 이동할 수 있도록 물 흐르듯 연결된다. 기획부터 인테리어, 동선 설계까지 센터 전반을 총괄한 사람은 정훈재 부민병원 미래의학연구원장이다. 그는 "차갑고 붐비며 사람을 긴장하게 만드는 기존 병원의 이미지를 벗어나고 싶었다"며 "갤러리에 온 것처럼 마음이 편안하도록 곳곳에 작품을 걸고, 날씨에 따라 향을 바꾸는 것도 수검자들에게 '휴식'과 '안정'을 주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곳을 찾은 이들이 '이젠 다른 데 못 가겠다'는 생각이 들 만큼 차별화된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 목표"라고 강조했다.
공을 들인 것은 센터 외관뿐만이 아니다. 건강검진을 받는 소비자들의 편의를 최우선으로 신경 쓴 흔적이 역력하다. 가장 큰 특징은 모든 과정을 자동화해 '당일 검사·당일 확인'을 구현한 점이다. 혈액과 소변 등 모든 검체는 천장에 설치된 이송관(에어슈터)을 통해 검사실로 즉시 전달된다. 인력 개입을 최소화해 이염과 분실 등의 위험을 줄이고 관리 효율을 높였다. 각 검사실에서 생성된 영상과 데이터는 실시간으로 중앙 서버에 저장되며 인공지능(AI)이 곧바로 판독한다. 채혈 후 40분 만에 주요 혈액검사 결과를 확인할 수 있는 비결이다.
정 원장은 "일반 검진센터는 대부분 1~2주 뒤 결과를 알리다 보니 환자들이 내용을 자세히 보지 않거나 뒤늦게 병원을 찾는 경우가 많다"며 "우리는 지속적인 관리가 목표기 때문에 추가 처치가 필요한 경우 당일 바로 진료를 이어간다"고 말했다. 이어 "직접 치료가 어렵거나 환자가 다른 병원을 원하면 예약도 잡아준다"고 덧붙였다.
고객 편의성을 최우선으로 고려해 국내 최대 초음파실을 만들었다. 이 센터는 총 15개의 초음파실을 운영하는데, 국내에서 10개 이상을 갖춘 곳은 드물다. 정 원장은 "하루 최대 300명이 대기 없이 검사를 받을 수 있도록 만들었다"며 "12개의 내시경실은 모두 1인실로 구성해 수검자의 심리적 부담을 줄이고 감염 관리 효율을 높였다"고 말했다. 환자가 충분히 휴식할 수 있도록 회복 병상은 내시경 병상의 약 2.5배인 25개를 갖췄다. 수면내시경을 받고 쫓기듯 나가지 않아도 되도록 배려한 것이다.

첨단 의료기기에 대한 과감한 투자도 눈길을 끈다. AI 판독 기능이 탑재된 초음파 장비 'R20'을 비롯해 미세한 병변까지 탐지할 수 있는 '3테슬라급 MRI(자기공명영상)', 짧은 시간에 전신을 촬영할 수 있는 '128채널 CT(컴퓨터단층촬영)' 등이 설치됐다. 이 가운데 3테슬라 MRI는 촬영 시간을 절반으로 단축해 환자가 검사 중 느끼는 불편을 크게 줄였다.
정 원장은 "R20은 정확도가 높아 장비가 지나가기만 해도 종양의 위치와 크기가 자동으로 기록된다"며 "굴곡이 많아 일반 내시경으로는 관찰이 어려운 소장까지 확인할 수 있도록 캡슐형 내시경도 도입했다"고 말했다.
공항과 가까운 지리적 특성을 살려 항공사 승무원·조종사 등을 위한 특수검진 프로그램도 운영 중이다. 직업 특성상 수면장애나 이명, 피로 누적이 잦은 항공 종사자들을 위해 뇌파·청력·시야·순환기 검사 등 맞춤 항목을 포함했다. 보다 사적인 검진을 원하는 이들을 위한 VIP룸도 마련돼 있다. 호텔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공간으로, 3개의 객실 중 일부에는 개인 사우나 시설도 있다. CT와 MRI를 제외한 모든 검진을 방 안에서 진행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검진 비용은 항목에 따라 4단계로 나뉜다. 시설과 규모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렴하게 책정했으며, 대학병원 대비 60% 수준이라고 병원 측은 밝혔다.
정 원장은 이 공간을 단순한 검진센터가 아닌 '라이프케어센터'로 정의했다. 질병을 조기에 발견하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유전체와 생활습관, 의료 정보를 바탕으로 개인의 삶 전반을 지속적으로 돌보는 체계를 구축하겠다는 구상이다. 이를 위해 센터는 유전자 분석을 넘어 '세포 은행'을 활용해 생애 전 주기의 데이터를 축적하고 이를 진단과 치료에 연계하는 구조를 준비하고 있다. 검진 과정에서 확보한 생체 시료를 보관·분석해 개인별 맞춤 해법을 제시하는 등 '검진-기록-치료 혹은 예방'으로 이어지는 순환형 관리 모델을 완성한다는 계획이다.
정 원장은 "내년쯤 마곡센터와 같은 층, 바로 옆 용지에 동일한 규모의 세포은행 전용 센터가 만들어질 예정"이라며 "향후에는 서울을 넘어 부산 해운대 등으로 지점을 넓혀 나가겠다"고 말했다.
다른 병원들도 앞다퉈 건강검진 혁신에 나섰다. 강북삼성병원 종합건진센터는 AI를 기반으로 한 '예측형 검진'을 도입해 검진의 패러다임을 바꾸고 있다. 지난해 도입된 심전도 기반 심부전 예측 AI '에티아(AiTiA)'는 기존 심전도로는 포착하기 어려운 미세한 이상 신호를 20초 만에 분석해 조기 진단의 정확도와 속도를 높였다. 실제로 이 기술을 통해 고위험 환자의 생명을 구한 사례도 보고됐다.
정현숙 강북삼성병원 서울건진센터장은 "AI는 단순한 자동화 기술이 아니라 의료진의 동료이자 환자 안전을 지키는 파트너"라며 "AI 기술이 검진의 예측, 효율, 고객 경험을 동시에 혁신하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센터는 현재 AI를 활용해 영상 데이터를 기반으로 건강 나이를 예측하고 X선 촬영으로 폐 기능을 분석하며 심전도를 통해 자율신경과 심혈관 위험도를 평가하는 등 다양한 영역에서 연구를 확장하고 있다. 또 AI가 수검자 특성에 맞게 검사 항목을 설계하는 시스템도 개발 중이다.
'맞춤형 VIP 검진'을 표방한 차움도 시설을 확충했다. 차움은 최근 1인 전용 프라이빗 검진실 '하이브(HIVE)'를 증축하며 고객 맞춤형 검진 시스템을 한층 강화했다. 앞서 차움은 2010년부터 고객이 개인 룸에 누워 있으면 내시경·초음파 장비와 전문 의료진이 직접 찾아가 검진을 진행하는 국내 최초의 '1인 검진룸 서비스'를 선보인 바 있다. 이 시스템은 고객 동선을 최소화하고 프라이버시를 보호해 국내는 물론, 해외 고객에게도 높은 호응을 얻었다.
개원 15주년을 맞은 올해 차움은 검진실 9개를 새로 증축해 총 20개 룸으로 확대했다. 검진 전에는 개인의 질환 이력, 가족력, 건강 상태를 바탕으로 전문의가 1대1 예진을 실시하고 그 결과에 따라 맞춤형 검진 항목을 구성한다. 검진 과정에서는 전담 간호사가 동행해 1대1 케어를 제공하며 유소견이 발견되면 차움 외래 진료과 또는 협력 병원으로 신속히 연계된다.
김재화 차움 원장은 "프라이빗 검진 하이브의 증설은 고객들이 오랫동안 기다려온 변화"라며 "15주년을 계기로 수검자들의 기대에 부응하고 건강검진의 새로운 기준을 제시하는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